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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Ѽ탐닉2009/01/19 16:58

허지웅 블로그를 거의 날마다 방문해서 새로운 글이 뭐가 올라왔는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을 가진 지 몇달이 지나가고 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떤 검색어를 쳤다가 그 블로그에 접속하게 된 아주 흔하고 평범한 사건 때문이었다. 초창기 다음 블로그나 말도 탈도 많았던 네이버 블로그 시절에는 이웃 블로그나 유명 블로그를 자주 찾아다녔고 가끔 댓글도 남겼고 방문을 받아서 이웃을 맺기도 하였다.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고 교유하려던 목적이 있었던 걸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웃이 남긴 칭찬 댓글을 보면 기분이 업되었고 내가 남긴 댓글에 기뻐하는 이웃을 보는 것도 즐거웠으며 그렇게 온라인상 유대가 돈독해져 가는 게 나름 즐겁기도 했다. 

티스토리로 옮긴 뒤부턴 온라인 상에서 교유하는 일을 끊었다. 검색하다가 가끔 맘에 드는 블로거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들에 대한 관심은 발견과 동시에 퇴락하고 마는 일회성으로 그쳤다. 그들에 비해 내가 더 낫다는 식의 자뻑 때문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글 쓰면 그만이고 다른 이들의 반응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를 밀어붙이게 된 탓이다. 글솜씨가 괜찮은 몇몇 블로그에 가끔 가서도 맘에 드는 글 한두개 정도 읽고 오는 수준이지 댓글을 달아 경의를 표하거나 감상을 남기는 짓은 부러 안한다. 앞으로도 안할 예정이다. 글 잘 쓰거나 자기만의 논리를 펼치는 지적인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가지를 치고 올라오면서 뭔가 말해주고 싶은 '꼰대의 욕망' 혹은 '소통의 욕망'이 솟구치지만 요즘의 나는 그런 것들을 잘도 누른다. 참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그냥 내 블로그에 배설한다. 다른 글엔 가타부타 반응 안한다. 허지웅 블로그를 발견한 이후 그의 글을 이것저것 읽다가 때로는 소통의 욕망을, 때로는 공감이나 반론을 제기하고픈 욕망을 느끼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냥 그의 글을 읽을 뿐이다. 때론 공감하고 때론 의아하고 때론 즐거워한다. 예전에 쓴 글들은 거의 못읽었다. 아니, 안 읽었다. 내가 그의 블로그에 발길을 닿은 직후부터 올라오는 글부터만 충실히 읽었다. 디워 광풍에 대한 의견이나 촛불집회 감상문, 대선과 사람들의 투표성향에 대한 진단, 각종 영화글, 여친이랑 헤어진 이야기, 반지하방과 직장과 엄마에 관한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기억난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쓴 '광장의 엄마'라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이 적힌 그의 블로그는 호황을 맞고 있었다. 그의 블로그 일일방문자 수가 전체 2위라는 기사를 보았고 댓글도 한 글당 50-60개 정도는 기본이었다. 댓글의 내용도 '허빠'와 '허까'로 나뉠 만큼 극렬하고 극단적으로 갈렸다. 주인장인 허지웅은 지나가는 아무나 댓글을 달아도 왠만하면 삭제를 안하는 호기를 부렸고 말도 안되는 오해나 억측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짤막한 답글을 아주 가끔씩 달기도 했다. 가끔은 그의 호기가 위태롭게 느껴졌으나 그러나 그의 결기 같은 게 어떤 땐 굉장히 강한 힘으로 나를 자극하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그의 글과 댓글을 자세히는 아니지만 대충이라도 읽는 충실한 방문자가 되었으며, 많은 부분 그의 글에 동의하는 이른바 '허빠'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무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
 

'겉멋만 든 양아치 같은', '깊이 없고 일시적인 트렌드에 불과한' 따위 그에 대한 조소섞인 비판 아닌 비난을 들을 때도 나는 그를 옹호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의 양아치스러움에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일관성 없어보이는 그의 취향도 좋아한다. 명색이 좌파면서 문신을 하고 간지나는 패션을 선호하거나 오토바이를 탄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좌파'가 생겨나야 한국의 좌파는 가망성이 있다고 진단하는 그의 명쾌한 좌파관이 신난다. 스스로 간지나는 마초가 되고 싶다고 선언하는 노골적 나르시시즘이 귀엽다. 주머니 사정 때문에 대부분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읽는 평소 나답지 않게 일부러 시간과 발품을 들여 교보문고에 나가 <대한민국 표류기>를 샀다. 그의 글에 한번도 댓글을 달아본 적 없고 훔치듯 들어가 글만 읽고 나오는 사람이지만 그의 책 한권을 사는 것으로 그의 가치관에 대해 조용히 동의하는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글들이 그의 블로그에서 읽은 글이었고 머리말과 맺음말의 자백도 충분히 예상가능한 크기와 질량의 글이었다. 그러나 블로그에서 읽는 맛과 그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블로그에서 읽는 글의 느낌은 마치 콘써트 현장에서 가수의 노래를 직접 듣는 라이브처럼 단기적인 몰입을 가능케하는 자극적이고 강한 맛이 있다. 그와 다르게 책으로 묶여진 그의 글은 뭐랄까 갓 태어난 아이를 신생아실에 놓아두면 부모나 가족이 와서 정해진 시간에 유리창을 통해 면회를 하는 행위를 연상케하는, 그러니까 그의 글에서 날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던 호흡이 투명한 유리 하나를 가운데 두고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다. 허지웅스러움이라 불릴만한 독특함이 일반적인 문자열 속에서 약간은 증발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 잠시 어리둥절하다. 
 

허나 책을 다 읽고나면, 왠만해서는 특별히 뒤로 돌아가 두번 읽게 되지 않는 블로그 글보다 책으로 펴내는 편이 훨씬 나았구나 하는 느낌이 더 압도적이다. 책 내길 잘했다 허지웅아. 그 얘길 꼭 해주고 싶었어. 어떻게 서른 나이에 그토록 자존과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간지나는 좌파로서 생존할 수 있는지 나는 늘 그게 궁금했고 그것 때문에 늘 그의 글이 궁금했다. 386세대 운동권 선배들과 후배들과 이른바 동지였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리멸렬한 소시민이 되거나 갈수록 구좌파 꼰대로 경직되어 가는 현실에 둘러쌓여 있던 내게 유머와 페이소스와 자기 취향으로 무장한 갓서른의 패션좌파 허지웅은 신선함과 귀여움 그 자체다. 내가 그를 지지하는 건 단지 그의 취향이 신선해서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돈이 가치 기준이 되는 이른바 일반적인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단호히 거부하는 그의 태도가 내가 그를 지지하는 가장 첫번째 이유다.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자기가 무얼 원하고 추구하는 존재인지 가장 먼저 발견하는 걸 우선으로 놓는 그의 방향성에 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보수적인 속물이라도 그의 삶을 관통하는 어떤 합리를 무시해선 안된다는 그의 가장 기본적인 테제 또한 동의한다. 세상의 많은 폭력은 자기가 믿는 방식만이 옳고 다른 사람의 방식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허지웅은 세상의 어떤 남정네보다도 덜 폭력적이다. 허지웅 같은 나이에 허지웅 같은 삶의 철학을 가지고 허지웅 같이 살아가기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는 선택을 했고 다른 이들의 삶 역시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방식은 거의 내 방식이다. 
 

모든 이가 다 허지웅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없고 또 그래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허지웅처럼 자기 취향에 충실하고자 하는 존재가 많아지는 건 내 보기엔 좋은 일이다. <대한민국 표류기>를 읽다보면 왠지 박민규가 떠오른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같은 박민규식 어법이 군데군데 들어있어서기도 하지만 조직이나 시스템과 잘 융화되지 못하는, 먹고살기 위해 별별 노동을 다 겪은 체험에서 생겨나는 직관적이고 인문학적인 개인주의자의 섬세함과 페이소스가 상당히 닮았다. 허지웅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두번째 이유는 그가 지금 내 연하의 애인과 같은 나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갖다붙이기식 이유다. 허지웅은 '풍만하면서도 청초한' 계륜미 스타일에 목을 매는 자칭 마초라서 나같이 나이많고 애딸린 아줌마에게 눈을 줄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나는 왠지 서른 살 내 애인과 허지웅을 오버랩시킬 때가 많다.
 

서른살 먹은 총각과 소통이 잘될 때면 허지웅 같은 간지나는 좌파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 같은 별 이상하고도 주관적인 자뻑에 사로잡힐 때가 간혹 있다. 때로는 아무리 천하의 허지웅이라도 열살이 훌쩍 넘는 연상의 여인에게 구애하기는 힘들 터이니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지금 내 곁의 애인이 허지웅보다 더 충격적인 존재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허지웅과 내 애인 사이에서 허우적대기도 한다.ㅋ 허지웅과 허지웅 동갑내기인 내 애인의 공통적인 매력은 그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모든 사람은 어제의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이며 변화하는 존재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과 고통과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사람, 특히 남자는 드물다. 허지웅이 애인을 떠나보내고서야 뒤늦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깨닫는 대목은 정말 아프다. 
 

그가 벌인 자살 해프닝을 보면서도 가슴이 저몄다. 내 과거 어떤 한 시절의 단면을 잘라 갖다 붙이면 더도 덜도 아닌 퍼즐조각처럼 꼭 들어맞는 에피소드여서 그렇고 그 사건 이후 그가 자신의 바닥을 보면서 중얼거리는 낱말들에서 소름끼치는 기시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더이상 사랑을 하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고 고백하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시간은 분명 그에게 새로운 사랑을 가져다 줄 것이고 그는 아프게 획득한 관계의 진실을 새롭게 적용하면서 사랑하게 될 것임을 이 누나는 확신한단다.ㅋ 잘은 모르지만 '있을 때 잘해'를 실천하지 못해서 여자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허지웅의 회한을 읽으면서 나는 또한번 지금 내 곁에 자리한 허지웅 동갑내기 총각의 위대함을 확인한다. 어떻게 그렇게 있을 때 잘 할 수가 있는지 허지웅한테 가서 비법 전수라도 해주고 오라고 등을 떠밀어주고 싶다.
 

우석훈이 추천사를 쓸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허지웅을 '공익적 도시빈민의 아이돌'이라고 명명한다. 암튼 말 지어 붙이는데 우석훈 따라갈 사람 드물다. 근데 맞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익적 도시빈민을 선택한 자들의 아이돌'이라고 불러야 옳다. 나는 자발적 공익적 도시빈민이지만 허지웅보다 월등하게 나이가 많다. 그럼에도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를 지지하며 심지어 총애까지 한다. 그러니까 아이돌 맞다. 내겐 연예인 같은 존재다. 나도 비슷한 종류의 글을 쓰고 그렇게 책을 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그의 첫출판이 몹시 부러워 한동안 염장당한 쓰린 가슴을 진정하느라 애 좀 썼다. 허나 나는 순순히 인정한다. 그는 나보다 이백배는 글을 잘 쓰고 간지나고 아이돌이 될만한 뭔가를 갖춘 존재라는 사실을. 
 

바람이 있다면 내겐 아이돌인 그의 책이 좀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소설가 한창훈이 그의 단편집에서 딸아이 피아노를 사주고 싶으니 좀 팔렸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은 대목을 기억한다. 나는 마침 그의 단편집을 사서 읽고 있었던 터라 그의 다른 단편집을 선뜻 샀다. 이유는 모르겠다. 연민이었을까. 나도 빈주머니인 주제에 그의 딸아이가 피아노를 가지게 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허지웅이 그의 첫 책을 내면서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기억은 안난다. 그의 진심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그가 책을 판 돈으로 간지나는 자켓을 사 입든 새로운 문신을 새기든 여자와 데이트를 하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다만 나는 그의 자발적 선택-공익적 도시빈민-에 대해 보다 많은 공감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허나 그보다 먼저는 내 딸아이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강요는 하고 싶지 않고...참 난감하다. 난감한 일 또 있다. 작정하고 영풍문고엘 갔는데 이 책이 없었다. 신경질이 났다. 영풍문고는 찾을 때마다 책이 없어서 자주 신경질이 나게 만드는 서점이다. 그 커다란 공간에 왜 하필 내가 찾는 책마다 없는 걸까. 그 커다란 공간에 무수히 쌓인 책들은 도대체 어떤 책들이란 말인가. 자발적 도시빈민의 아이돌 허지웅 책도 안갖다 놓은 대형서점이라니,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쑥 달아나버린다. 

Posted by by 룰루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