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비가 온다. 우르릉 쾅쾅쾅 몸부림을 치면서. 야호~! 신난다. 반바지 입고 쪼리 신고 우산 받쳐 쓰고 비오는 거리를 걷노라니 발에 와닿는 빗방울의 감촉과 자동차가 빗물을 가르며 지나는 경쾌한 소리와 바람에 떠밀려 사선으로 낙하하는 비의 몸체와 비에 묻어오는 시원한 공기 내음에 온몸이 들뜨고 발걸음이 통통 튄다. 나는 보랏빛으로 그라데이션된 공주풍 우산을 들고 빙빙 돌리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 앞 상가를 지나친다. 비야~ 너 참 오랜만이다. 정말 반갑다. 장마져서 시도때도 없이 비만 오는 건 지루한 노릇이지만 햇볕 쨍쨍하고 습기 많은 날들 중에 갑자기 쏟아지는 오늘 같은 비는 반가운 손님처럼 정겹기만 하구나.
비에 젖은 쪼리의 축축함과 빗방울이 와닿아 간지러운 종아리를 느끼며,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 너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대답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 데~ 살금살금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문득 "왜 사람들은 항상 같은 자리에만 앉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노래를 멈추고 비의 감촉을 음미하는 일도 잠시 스톱하고 궁금증에 빠진다. 일한 지 한달 쯤되자 독서실에 자주 오는 이용자 몇 사람의 얼굴을 익히게 되었고 청소하는 도중에 얼굴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정도가 되었는데 그 단골 고객이라는 분들은 항상, 언제나, 변함없이, 늘, 같은 자리에만 앉는다.
독서실 문 여는 시간 아침 9시, 내가 출근하는 시간도 9시. 내가 출근해서 가방을 놓고 머리를 묶어 올리고 담당 공무원과 이런저런 말 몇마디 주고받고 어떤 날은 가끔 커피도 한 잔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걸레와 밀걸레를 빨아 끌고와서 청소를 시작하려고 보면 단골 이용자 서너 명 또는 너댓 명은 벌써 와서 자리를 점하고 앉아 있다. 내가 일한 한달 동안만 그랬던 건 아닐테고 늘 버릇처럼 그래왔을 터. 나 같으면 좌석이 60개나 되니까 오늘은 이 자리, 내일은 저 자리, 하면서 같은 독서실이라도 유목민처럼 돌아댕겼을텐데 그분들은 죽어라 같은 자리를 고수한다. 그 덕에 나는 단골 이용자들 좌석엔 걸레질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 거기에 낙서가 있는지 쓰레기가 있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행여나 공부하는 데 방해될까 슬리퍼 소리 안나게 살금살금 깨끔발을 딛고 종아리에 바싹 힘주면서 청소하는 나는 사람이 앉은 좌석에 가서 정중하게 "오늘은 이 책상을 청소하려는 데 잠시만 비워주시겠습니까?" 라는 말을 꺼낼 염사가 없다. 또는 누군가 좌석에 앉아 쓰러져 자고 있으면 밀걸레질 도중 행여나 그가 깰까봐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으려고 콧구멍이 벌렁벌렁 할때까지 숨을 참기도 한다. 공부하는 사람 방해하는 것보다 자는 사람 깨는 게 더 무서워~ㅜ.ㅜ. 그러면서 속으로는 '가끔은 다른 좌석에 앉아주면 청소하기 좋을텐데' 생각한다. 그 사람들 지정석에 걸레질을 못해서 괴로운 건 없다. 다만 여러가지 선택 상황이 주어져 있음에도 같은 자리를 고수하려는 취향이 어디서부터 발원된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궁금하다고 해서 의문이 풀리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조차 원인을 스스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궁금해하지 말아야 옳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혹시 같은 자리를 고수하는 취향은 한사람만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일편단심 취향과 비슷한 걸까. 내 추측은 그렇지만 뭐, 아님 말고. 각자의 취향이니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곁다리로 이어지는 또 한가지 궁금증. 출입구에서 먼 좌석이나 벽 쪽에 붙어 있는 좌석, 이른바 구석진 자리를 청소하다보면 낙서나 되어 있거나 쓰레기 널려있는 경우가 많다. 다 그렇다고 단정지을 순 없으나 다른 좌석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 왜 그럴까. 잘 안보이는 구석진 자리에 숨어 낙서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욕망을 억압하는 사람일까. 오프라인에서는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람이 온라인상에서는 매우 활발하게 욕망을 표출하는 심리 같은 것? 역시나 아님 말고.
두가지 궁금증 모두 무의식적인 습관이나 버릇에 관한 것인데, 사람의 습관이란 자기 자신조차 어쩌지 못하는 굉장한 두께와 무게와 질감을 지녔기 때문에 쉽사리 바꾸기 어렵다. 오죽하면 습관 하나 고치는 것이 우주를 들었다놓는 일만큼 힘들다는 말이 생겼겠나. 생겨먹은 대로 습관을 고수하면서 사는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삶을 바꾸려고 하지도 않고 버릇을 고칠 생각도 않는다. 어쩌면 그게 제일 편할지도 모른다. 익숙한대로만 살아가면 되니까. 그럼, 지정석에만 앉는 그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일까? 변화를 별로 불편해하지 않는 나도 내 하고싶은대로만 하려는 습관을 못버리고 있는 걸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단 한가지 취향만을 보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네 좋아하는 사람이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싶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 다른 습관들에서도 대체로 보수적인 면이 강한 건 맞지만 특정한 사안에 대해선 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이고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를 지닌 경우도 없진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어떤 사람에 대해 단정적으로 "당신은 무슨무슨 주의자요" 낙인 찍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타인의 취향이 올바르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내 취향이 무조건 다 좋은 것도 아니며 논리나 합리를 따라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보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우왕좌왕하는 사람이 훨씬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그저 '취향이 다르구나'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습관이 나이 들어 새로 생긴 건지 원래부터 그랬는데 이제서야 태생적 기질이 발현된 건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늘 같은 자리에 앉는 이유가 궁금하고 구석 자리에 앉아 낙서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 욕망을 더 많이 억압하는지 궁금하지만 그냥 궁금해하다가 만다. 여기에 쓰고나서 뒤돌아서면 그 궁금증을 잊을 것이고 그것을 궁금해했다는 사실도 잊을 것이다. 그러고는 청소를 하다가 또다시 구석진 자리에서 낙서를 발견하거나 지정석에 앉은 단골 손님의 등짝을 발견하게 되면 처음처럼 새롭게 궁금해 하겠지. 정말이지 왤까? 하는 하면서. 그럼 그때 가서 또 궁금해하면 된다. 답은 없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릴 타인의 취향일 뿐이며 저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에 관한 문제이니 이유나 원인을 궁구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비를 본다. 투명한 빗방울들이 모여 흐르는데도 세상은 어둑어둑하다. 이 부조화가 빚은 쌉싸름한 느낌, 참 좋다. 문득 비만 오면 미쳐 날뛰던 한 남자가 생각난다. 시를 좋아하고 눈빛은 촉촉(축축?)해서 감성이 넘치다못해 느끼했던 남자. 교복 입은 여자애만 보면 환장하던 로리타 취향의 독신남. 쪼리에 와닿는 빗방울처럼 싱그러운 펭귄도령이랑 살다보니 행여나 그런 느끼남이랑 엮이게 될까봐 살 떨린다. 으으으... 지난번 비올 때 모처럼만에 쉬는 펭귄도령이랑 손잡고 광화문통을 쏘다녔던 기억이 너무 선명하고 좋았기 땜시, 느끼남은 완전 거부감이 든다. 말 해봤자 입만 아프지만, 여름비 맞으면서 반바지 차림으로 도심을 방황해도 전혀 느끼하지 않은 펭귄도령 같은 남자가 최고다!!(결국 이 말을 하려고.ㅋㅋ)


